에이츠카레오

2016. 3. 12. 09:43

 

오월 오일은 애들보다 어른이 더 신나한다는 어린이날이다그리고 스오우 츠카사가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츠카사는 매년 오월 오일에 신체검사를 했다병원 하나를 잡고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원래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줘야 하는데 일 년에 한 번만 했다스오우 츠카사를 이끌어주는 리더 님께서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언젠가는 남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거 왜 우린 일 년에 한 번씩 하느냐 물었더니 금세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져선아무튼 가슴 허리 허벅지(츠카사는 솔직히 왜 허벅지의 두께를 재는지 몰랐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신장 몸무게 시력 근력 지구력 기타등등 기타등등연례행사처럼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었으니 하루를 전부 꼴아 박아야 했다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흘끔 보니 벌서 오후 여덟시였다이제 뭐가 남았더라곰곰 남은 검사를 꼽아보니 하나뿐이었다신발을 벗고 얌전히 발판 위로 올라가자 정면으로 다가온 레오가 어깨의 수평을 맞춰주고 등허리를 고정한다.

츠키나가 레오는 츠카사가 처음으로 군대에 들어왔을 때 그가 속한 9부대 나이츠의 분대장이었으며 현재는 분대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츠카사의 스승노릇을 자처하고 있었다자신보다 고작 네 살 밖에 많지 않으면서 어떻게 분대장의 자리에 올랐는진 몰라도 능력 하나 만큼은 정부군마저도 알아주었다고 한다지금이야 시범을 보일 때가 아니면 능력을 꼭 여며두었지만 한창 때는 날아다녔다는 소문만 몇 번 얻어 듣기도 했다츠카사는 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엄청난 편이었으므로 그 모든 소문을 곧이곧대로 다 믿었다아닌 게 아니라요즘도 화나면 벽에 금부터 내고 보는 게 딱히 신뢰가 없어도 알만했다.

삐빅 했다삐빅.”

삐빅 했구나.

머리 위로 툭 닿고 가는 오토스틱에 츠카사의 양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제발 일 센티라도 자랐기를삼 년 째 해묵은 바람에는 변화가 없다삼 년 전엔 그래도 작다는 소린 안들었는데 삼 년간 눈높이에 변화가 없으니 순식간에 작은 키로 변모했다.

“167!”

하늘도 무심하시지이번 년에도 틀렸나봅니다귀공자처럼 뽀얀 얼굴 위로 삽시간에 그늘이 진다.

츠카사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한숨을 푹 쉬고 제 정수리 위로 손바닥을 올려놓았다같은 기수의 대원들과 비교하면 십 센티는 모자란 신장이 여간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억지로 잡아 늘릴 수도 없는거고 기도를 해봐야 듣고 무시할 따름이다이제 포기할까그래도 리더보단 크고 싶었는데 일 센티 차이인데제 앞에서 히죽대는 얼굴로 차트를 작성하는 레오를 보자 더 울화통이 터진다아닙니다그래도 아직 사 년은 남아있어요사 년간 일 센티는 크겠지이 스오우 츠카사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속으로 170은 고사하고 168까지만 커보자고 다짐을 하고 있는데 볼펜의 깍지를 달각대던 레오가 대뜸 아 맞다말문을 연다.

스오있지 나 내일 모레인가 여길 떠날 거야~!”

뭔가 이상한 말을 하려나 예상은 했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이상한 말이었다.

?”

그래서 되물었다.

너도 이제 새 리더를 구하도록이만 해산자료는 넘기고 갈거야.”

다행히 예상한 범주내로 더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랗게 뜨인다츠카사는 무슨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을 물었다.

어디로요?”

이번에는 레오의 눈동자가 굴러간다.

“......아무튼 여긴 아니야.”

그러고는 히죽 웃는다. 아직까지 레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데 정신이 없는 츠카사로선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츠키나가 레오는 떠나지 못했다다만 레오의 발목을 잡은 이가 츠카사는 아니었다츠카사는 맹한 얼굴로 레오와 맞은편에 앉아 찻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고 있는 이를 번갈아보았다.

츠카사군에겐 미안해이러면 꼭 내가 뺏어간 것 같잖아.”

고개를 갸웃 기울인 채 웃는 얼굴이 선하다그러나 웃는 얼굴이 선하다고 해서 사람이 선하란 법은 없다늦은 저녁 한 손에 작은 종이 상자를 들고 두 사람을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정부군 제 1부대 피네 소속의 텐쇼인 에이치였다명실상부한 에이스이자 훌륭한 지휘관이었고,전장을 아우르는 황제였다.

그치만 돌려 받는거야.”

유리알같이 파란 눈이 또렷하게 레오를 응시한다.

에이치가 사온 것은 케이크였다에이치가 말하기를 오늘이 바로 레오의 생일이라 했다생일 축하해 츠키나가군또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와버렸어그동안 잘 쉬었니에이치는 둘도 없이 상냥하게 말했으나 레오는 눈을 치뜨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츠카사는 본능적으로 레오가 떠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진 몰라도 에이치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에이치의 설명으로는 레오와 에이치가 한때의 파트너라고 했다. 예전에 각인을 했고, 함께 임무를 나갔다고 한다. 거기까지 들은 츠카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들떠있는 에이치와는 달리 레오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왜 그런 얼굴일까?”

에이치는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각인이면 한 분이 가이드라는 말 아닙니까?”

놀란 츠카사의 외침에 에이치가 미소 짓는다. 웃을 때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건 버릇인 것처럼 보였다. 에이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대신 묵묵하게 닫혀있던 레오의 입이 열렸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더니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츠카사의 팔목을 잡고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게 아닌가. 얼결에 닫힌 문만 멍하니 보게 된 츠카사가 조심스레 똑똑, 노크 했다. 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문 가까이 귀를 대보아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츠카사는 다시 한 번 손등으로 건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저기, 리더...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그냥 열어 재꼈다.

스오우 츠카사는 잘 배운 도련님이긴 했어도 인내심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군대라는 빠듯한 계급 사회 속에서도 궁금한 건 알아야하고 맘에 안 드는 건 지적해야하고 아무튼 좀 꼰대 같은 면이 있었다.

츠카사가 그렇게 문을 열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레오와 에이치가 아주 가까이 붙어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에이치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레오의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마치. 아무것도 보지 말라는 것처럼? 레오는 소파 팔걸이에 등을 기댄 채 얌전히 그 작은 손에 제 몸을 맡긴 듯 움직이지 않았다.

놀랐니?”

“조금 놀랐습니다.

“아니면 혹시 센티넬 둘이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건 놀라운 게 맞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츠카사는 에이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레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주시했다. 이상합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요.

그 순간 츠카사는 아주 예전에 츠카사가 처음 센티넬로 입대를 했던 날 우연찮게 주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조만간 정부군으로 갈 부대 하나가 있는데, 거기 분대장의 능력이 마인드 컨트롤이였다던가 하는 대충 흘겨들었던 소문이었다.

츠키나가군은 내가 가진 가장 좋은 패야. 눈 뜬 장님처럼 잃을 순 없지.”

어린애에게 좋지못한 광경을 들킨 기분이 좀 찝찝하긴 했어도 쳐낼 사람은 빠르게 쳐내는 것이 에이치가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뺐을 거면 확실하게. 텐쇼인 에이치는 언제나처럼 아름답게 웃고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서릿발이 선 듯 새파란 눈이 츠카사에게서 레오에게 옮겨간다. 에이치는 좋은 상관이었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츠카사도 그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레오가 알고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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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iece of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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